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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만찬 성목요일을 지내고 나서 - 주임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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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790회 작성일 20-04-10 09:13

본문

주님 만찬 성목요일을 지내고 나서

 

+ 찬미 예수님.

사랑하는 만덕 신자 여러분, 교회 공동체는 코로나19로 신자 없는 성삼일을 지내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의료진들과 확진자들과 그 가족, 우리 공동체 모든 분들의 영육간에 건강을 기도합니다.

 

늘 성목요일 복음에서 예수님과 제자들이 가졌던 마지막 만찬으로 초대되었습니다. 요한복음사가가 전하는 최후의 만찬은 공관복음서가 전하는 파스카 만찬과는 그 모습이 조금 다릅니다. 다른 복음서들이 성체성사 제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반면, 요한복음은 성찬례의 제정보다는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예수님의 모습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교회는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는 예수님의 모습에서 무엇을 보았기에, 20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성목요일 주님의 만찬 전례에서 사제와 그리고 신자 분들을 통해 발씻김 예식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어느 신부님께서 부제 때, 스페인의 유명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을 때 겪었던 일을 소개합니다. 이 신부님께서 성 야고보 사도의 무덤이 있는 산티아고 주교좌 성당을 향해 약 20여 일을 걸었을 무렵, 작고 아담한 성전이 있는 순례자들을 위한 숙소에 머물게 되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저녁을 먹고 평소 해오던 대로 아름다운 노을을 감상하려고 나가다가, 많은 순례자들이 성전으로 이동하는 것을 보고는 호기심에 그들을 따라 성전으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성전에서는 중세시대 때부터 전해오는 전통에 따라 프란치스코회 수사님들이 순례자들을 위해 좋은 말씀과 기도를 해주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마지막 예식은 수사님들이 순례자들의 발을 씻어주는 예식이었는데, 이 신부님께서도 발씻는 예식에 참여하게 되었답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수사님께서는 그 신부님의 발을 제일 먼저 정성스럽게 씻어주시고는 그 신부님의 발에 키스를 해주셨습니다. 감격에 겨워서 행복해하고 있는 신부님을 조용히 바라보시던 수사님께서는 그 신부님에게 수건과 물주전자, 그리고 대야를 주시면서 옆 사람에게 그대로 해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옆에 있던 아름다운 외국 여성의 발을 두근대는 마음으로 그 여성의 발을 씻어주면서 깜짝 놀라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였다고 했습니다.

첫째는, 아름다운 외모와는 달리 그 여성의 발은 크고 작은 물집과 굳은살로 뒤덮여 있었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발을 씻어주기 위해 쪼그리고 앉아있던 자세에서는 키스를 할 수가 없어서 무릎을 꿇어야 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많은 것을 생각했습니다. 우리네 인생이 평탄하고 원만했든 아니면, 가시밭과 사막 길 뿐이든, 우리는 우리 각자의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 인생길의 발은 그 어떤 신체부분보다 우리의 삶을 솔직하게 담고 있습니다. 발은 우리가 걸어가는 길과 맞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태어나서 여태껏 발에 보톡스를 맞는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만큼 우리의 발은 우리가 걸어온 길을 숨김없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제자들의 발을 어루만지시는 예수님께서는 결국 제자들의 인생을 어루만져주시는 것입니다. 이제껏 우리가 걸어온 길에 대한 위로와 감사이며 앞으로 걸어갈 길을 위한 축복과 기도입니다. 가시밭길인 인생에서 예수님의 위로와 축복만큼 우리에게 용기와 위안을 주는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다른 이의 발을 어루만지고 씻어주는 행위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상대방보다 자세를 낮추고 무릎을 꿇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기희생은 언제나 고통을 수반하기 때문입니다.

 

성목요일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기 위해 일어나셔서 겉옷을 벗었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겉옷을 벗으셨다는 표현의 단어는 착한 목자의 비유(요한 10,11)에서 사용된 목숨을 내놓는다는 표현과 같은 단어입니다. 결국 일어나셔서 겉옷을 벗으셨다는 예수님의 모습에서 우리가 묵상할 수 있는 것은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당신의 목숨을 내어 놓으시는 모습입니다. 그 모든 것을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신 예수님의 모습은 그 자체로 부활을 의미합니다.

 

부활의 믿음은 죽음의 신비와 함께 존재합니다. 부활에 대한 믿음은 우리 자신을 다른 이의 발아래에 둘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입니다. 지금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기 위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면, 그것은 이미 부활의 삶인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따르는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께서 제자들에게 하셨듯이 제자들도 서로에게 발을 씻어주기를 원하십니다. 서로가 서로의 인생을 어루만져주고 위로와 감사와 축복을 나누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주위 분들 때론 전혀 알지 못하는 분들로부터 인생에 위안을 받고 혹은 반대로 용기와 격려를, 감사를 전하며 살아갑니다.

 

사랑하는 만덕 신자 여러분,

코로나19사회적 거리두기때문에 조금씩 지쳐 갈 수도 있습니다. 또한 우리 자신들의 영적인 상태 또한 제자리에 머물거나 안주할 수 있는 때입니다. 이럴 때 일수록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면서 보여 주신 인간에 대한 사랑과 겸손한 마음, 그리고 희생과 봉사에 대하여 깊이 묵상했으면 합니다.

 

이제껏 인생을 살아오시느라 지치고, 가시밭길을 걸어오시느라 힘들었던 배우자, 부모님, 자녀들의 발을 정성껏 닦아드리는건 어떻겠습니까?

스스로 종의 모습을 취하신 예수님의 손길에 우리 발을, 우리의 인생을 숨김없이 맡겨드리며 성삼일 전례의 신비를 체험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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